발달장애 자녀를 위해 물리치료학·특수교육·사회복지를 넘나들며 공부한 엄마. 광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석사·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순천제일대학교 의료재활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인 유인정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학문은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합니다.
제 경험이 힘든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 유인정 박사 (광주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졸업)

자기소개 및 광주대학교와의 인연

유인정 박사

Q1. 안녕하세요, 박사님. 근황과 함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광주대학교 대학원 졸업생 유인정입니다. 현재 순천제일대학교 의료재활과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일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난 반년 동안 박사학위 논문을 정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쳤는데, 방학을 맞아 편안하게 쉬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들을 정리하고 지인들도 만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특히 논문을 쓰는 동안 곁에서 지켜봐 주고 걱정해 준 아들들과 운동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부족했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Q2. 광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계기와 정희경 교수님과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저는 사회복지학부가 아니라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물리치료학 석·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첫째 아이가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할 시기가 되면서 졸업 이후 성인기의 삶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당시 물리치료학 박사학위 논문만 마치면 졸업할 수 있었지만, 아이의 3년 이후 삶을 어떻게 열어줄 것인지 고민한 끝에 광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알게 됐습니다. 장애인복지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사회복지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석사과정부터 시작했습니다.

첫 학기에 정희경 교수님의 장애학 세미나 수업을 들었는데, 저에게는 굉장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수업을 통해 그동안 제가 엄마의 시선으로만 아이의 삶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됐습니다. 만약 그때 정희경 교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같은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저에게 장애학과의 만남은 새로운 눈을 갖게 해준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엄마에서 연구자로 — 공부를 시작하다

Q3. 자녀를 키우신 경험이 대학원 진학과 연구자의 길로 이어진 과정도 궁금합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장애를 알게 되면서 제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당시에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나 제도가 충분하지 않았고, 아이를 양육하면서 재활이 무엇인지조차 잘 몰랐습니다. 또래보다 발달이 늦은 아이를 위해서는 엄마가 먼저 재활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했고 특수교육학도 함께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학부 과정만으로는 제가 찾고 있던 답을 얻기 어려웠고, 교수님들의 권유와 응원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이후 겸임교수로 일하면서 장애아동을 치료했지만, 물리치료만으로는 아이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성인기 삶을 설계하는 데 도움을 받고자 정보를 찾다가 광주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을 알게 됐습니다. 답답했던 제게 한 줄기 빛과 같은 느낌이었고, 그렇게 광주대학교에서의 배움이 시작되어 박사학위 취득까지 이어지게 됐습니다.

유인정 박사
유인정 박사

Q4.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신 경험이 어떻게 연구로 이어지게 되었나요?

장애와 관련된 제도가 거의 없었던 당시, 뜻을 같이했던 부모들과 함께 장애 관련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활동했습니다. 교육청과 국회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특수교육법, 장애아동영유아보육법 등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경험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모들이 전문가들로부터 멸시를 받거나 상처를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알아야 전문가들에게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도 제대로 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 아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 제 학문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문은 배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연구로 이어졌습니다.

Q5. 개인적인 경험을 연구로 풀어내면서 새롭게 발견한 점도 있었나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아 저 혼자 힘들게 감당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애사를 돌아보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저와 아이를 돕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셨고, 남편은 제가 아이를 양육하는 과정에서 한 번도 반대하거나 불만을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시부모님과 친정 부모님도 공부와 둘째 아이의 양육을 도와주셨고, 형제들도 재활치료비를 보태거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습니다.

당시에는 장애 부모로서 버거웠던 삶에 가려져 그들의 노력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생애사를 연구하면서 가족들의 배려가 저를 지탱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힘들게 지나온 시간들이 오히려 저를 내적으로 성장시켰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연구를 통해 바라본 장애 가족의 삶

유인정 박사
유인정 박사

Q6. 앞으로 더 많은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요?

지금은 많은 제도가 마련됐지만, 앞으로는 차세대 부모들이 기존 제도와 정책의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완하고 장애 자녀들이 자립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이러한 부분이 더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연구를 통해 제 삶을 성찰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장애 부모들도 자녀의 삶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도 함께 돌아보고, 자녀와 부모가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발달장애 형제자매를 둔 비장애 자녀들의 마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둘째 아이의 이야기를 연구 과정에서 직접 듣게 됐고, 그동안 알면서도 마음으로 인정하지 못했던 아이의 아픔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그 후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을 경험했습니다.

Q7. 자녀를 돌보는 일과 연구를 병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그리고 그 시간을 버티게 해준 힘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힘들었던 것은 쉬어갈 시간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낮에는 일하고 아이를 챙기고, 밤에는 공부하면서 수면시간이 4시간을 넘지 못했던 때도 많았습니다. 2일에 한 번씩 코피를 흘릴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포기를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의 재활과 양육을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공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게 됐습니다. 하나씩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배운 내용을 두 자녀에게 실천하면서 변화를 확인할 때 힘들었던 순간들이 잊혀졌습니다.

또 공부를 하면서 어린 시절 저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양육 방식도 다시 바라보게 됐습니다. 부모님의 사랑과 가르침이 제가 어려운 시간을 버티고 학문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Q8. 그 여정 속에서 가장 따뜻하고 뭉클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무엇보다 자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뿌듯합니다. 장애 자녀가 장애라는 이유로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둘째 아이 역시 어린 시절 장애 형이 있는 가정에서 생활하며 겪었던 아픔을 잘 이겨냈고, 지금은 저에게 "엄마로 와줘서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다음 생에는 엄마가 자기 딸로 태어나 달라"고 했던 말을 들었을 때는 지금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부족하지만 배우면서 자녀들에게 실천하려고 노력했던 결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했던 저에게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그 이후 — 앞으로의 길

유인정 박사
유인정 박사

Q9. 오랜 시간 끝에 논문을 완성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순간, 어떤 기분이셨나요?

박사과정을 진행하면서 건강에 문제가 생겨 논문을 60% 정도 진행한 상태에서 몇 년간 쉬어야 했습니다. 일과 자녀 양육을 병행하면서 물리치료학, 특수교육, 사회복지 분야의 학업을 15년 가까이 이어오다 보니 몸에 무리가 갔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휴식의 시간을 가진 뒤 다시 논문을 완성했는데, 마지막 순간에는 지난 시간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습니다. 거세게 몰아치는 풍랑 속에서 배가 나아갈 방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마침내 잔잔한 해변에 도착한 느낌이었습니다.

Q10. 이번 연구를 통해 세상에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장애인과 그 가족은 사회의 도움을 받고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건강하게 살아가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봉사를 받는 주체에 머무르기보다 봉사하는 주체가 되고자 노력했고,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학문의 의미를 전하고 장애인단체와 보육시설에서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왔습니다.

개인의 안녕만을 위해 공부한 것이 아니라 장애 부모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제 경험이 누군가에게 작은 모델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제 경험이 힘든 누군가에게 작은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Q11. 박사학위 이후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요?

자녀의 학령기에는 아이를 위해 살아간다고 할 만큼 부모로서의 의무에 힘을 쏟았습니다. 이제는 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만큼 저 자신의 삶과 권리도 찾아가고 싶습니다.

장애 자녀와 동반자가 되어 서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 소박한 꿈입니다. 장애가정이 위협받거나 해체되지 않고 평온하고 보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후배들에게 전하는 말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진실을 말하는 용기, 그리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용기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Q12. 광주대학교에서의 배움부터 한 사람의 엄마, 연구자로서의 도전까지. 지금까지의 여정은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자녀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길을 찾던 중 광주대학교를 알게 됐고, 이곳에서의 배움은 제 삶에 중요한 전환점이 됐습니다.

장애학은 제 사고를 전환하게 했고, 둘째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진실을 마주하고 화해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배움은 저에게 현실을 회피하기보다 직면하고 해결하려는 힘을 주었고, 한 사람의 엄마에서 연구자와 활동가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광주대학교에서의 배움은 제 삶의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앞으로도 학교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성장의 끈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Q13. 새로운 도전이나 연구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족한 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앞을 보며 천천히 나아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실력은 연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쌓이기 때문에, 힘든 순간에는 먼저 연구한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며 묵묵히 걸어가면 됩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과정이지만 인내의 순간들은 언젠가 결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도전과 연구는 결국 자신을 알아가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용기, 진실을 말하는 용기, 그리고 배운 것을 실천하는 용기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후배들의 아름다운 도전을 힘껏 응원하겠습니다.